"제모습 찾은 광화문"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光化門)은 1395년(태조 4) 9월에 창건, 정도전(1342~1398)에 의해 사정문(四正門)으로 명명됐다.

1425년(세종 7) ‘왕의 큰 덕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의 광화문으로 명칭을 바꿨다. 하지만 이름에 걸맞지 않게 광화문은 두 차례 소실되는 등 수난을 당했다.

처음 광화문이 아픔을 겪은 것은 임진왜란 때였다. 조선왕조실록 선조수정실록에 따르면, 광화문은 건립 200년만인 1592년 불탔다. 당시 선조(1552~1608)가 왜군을 피해 피란을 갈 때 일부 백성이 경복궁에 불을 질러버렸다. 궁 안에 있던 두 곳의 관서, 장례원과 형조에 공사 노비의 문서가 있기 때문이었다.

난민들은 불을 질러 흔적을 없앴으며 경복궁을 비롯한 창덕궁, 창경궁 등이 일시에 모두 타버렸다. 이 와중에 광화문도 불에 탄 것으로 전해진다.

경복궁 중건은 1865년(고종 2)에서야 시작됐다. 그 동안 국가 재정 부족으로 경복궁을 다시 세울만한 여력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흥선대원군은 왕실의 존엄성을 과시하고자 경복궁 다시 짓기를 대왕대비인 신정왕후에게 건의, 광화문도 이때 함께 재건됐다.

1927년 일본이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이 건물과 방향을 맞추기 위해 건춘문의 북쪽으로 옮겨지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 다음 광화문을 겨냥한 것은 6·25 동란의 포화였다. 전쟁을 거치며 목조로 된 다락 부분이 불에 타 사라졌다.

이후 광화문은 박정희(1917~1979) 전 대통령 재임 기간인 1968년 아랫부분인 석축은 그대로 둔 채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윗부분만 복원했다. 게다가 원 위치에서 11.2m 뒤, 13.5m 동측, 3.75도 반시계 방향으로 틀어져 있었다.

광화문 복원 공사는 2006년 12월4일부터 이뤄졌다. 2007년 5월 철근 구조 광화문을 철거, 같은해 11월 원래 위치와 규모 확인 등을 위한 발굴조사를 완료했다. 이어 가림막을 치고 육축(陸築), 즉 성문 축조를 위해 큰 돌로 만든 성벽을 쌓는 과정을 거쳐 지난해 11월27일 상량식을 했다.

올들어 광화문 문루 단청공사와 가설덧집, 광화문 현판 설치 등을 거쳐 마침내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을 15일 드러냈다. 온갖 영욕을 거쳐 615년만에 제모습을 되찾았다.

한편, 광화문 공개 후에도 동십자각 주변의 궁장설치, 하수암거 이설 공사 등은 계속 추진된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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