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용의자 이모씨 수사 청주경찰, 당시 상황 전해"범행 연관성 알고 싶다"던 화성경찰, 청주 방문 안 해'스타킹' 화성에선 범행 도구로 사용…청주선 시체 유기에만청주서 DNA 채취했으나 화성 미검출로 대조 불가능해

1994년 충북 청주에서 처제를 성폭행·살해한 이모(56)씨를 검거한 경찰은 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를 앞에 두고도 두 사건과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했을까.

일각에서는 두 지역 경찰간 공조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진범을 잡을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타킹과 속옷으로 시신을 묶어 유기한 수법이 유사했음에도 청주 경찰과 화성 경찰 모두 이씨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두 지역 경찰이 채취한 혈액형이 달라 처음부터 용의선상에서 배제했던 것 아니냐는 의문도 있다. 화성 경찰은 범인의 혈액형을 B형으로 추정한데 반해 청주 경찰은 이씨의 혈액형을 O형으로 채취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당시 처제 살인사건을 수사했던 경찰관은 "동일범으로 볼만한 단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청주서부경찰서(현 흥덕경찰서) 김시근(62) 전 형사는 "범행 수법은 유사했으나 두 사건과의 연관성을 찾기 어려웠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화성 사건은 스타킹과 양말 등 피해자의 옷가지가 살해 도구로 사용됐으나 청주 사건에서는 스타킹과 윗속옷이 시체 부피를 줄이는 용도로만 사용됐다"고 말했다.

김 전 형사는 수사 과정에서 이씨와 함께 그의 본가가 있는 화성군 태안읍을 방문했다. 청주 처제살인사건에 대한 증거 확보 차원이었다.

그 자리에서 연쇄살인사건을 수사 중인 화성 경찰 측과 잠시 조우했지만, 양측 모두 동일범의 소행일 것으로 추정하지 못했다.

이후 화성 경찰이 "연관성이 있는지 알아보고 싶다"며 청주서부경찰서로 연락을 했으나 실제 방문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김 전 형사는 "악랄한 수법이었지만, 두 사건을 비교 분석할 자료가 부족했다"며 청주 경찰의 부실수사 의혹을 일축했다.

이 사건을 수사했던 또다른 경찰관은 "이씨를 바로 체포했으나 공소를 유지할만한 뚜렷한 증거가 없었다"며 "한 달간 청주와 화성을 오가며 증거를 찾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씨의 청주 집 욕실 세탁기 받침대에서 피해자의 DNA를 채취해 결정적 증거로 썼다"며 "청주에서 이씨의 DNA도 채취했으나 당시 화성연쇄살인사건에선 이씨의 DNA가 나오지 않아 두 사건을 대조할 수 없었다"고 했다.

지난 17일 이씨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특정한 경기남부경찰청 측은 "당시 범인이 B형일 수 있다고 참고해 수사했던 것은 맞다"면서도 "현장 증거물 가운데 혈흔 등으로 B형이 나왔던 것인데, 당시 혈액형 확인은 용의자의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고, 부정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수사했던 한 경찰관은 "당시 과학수사 수준은 기껏해야 혈액형 구분 정도였고, B형이라는 혈액형도 4분의1 확률의 접근수단일 뿐이었다"며 "화성사건 피해자의 DNA와 이씨의 DNA가 일치하는 상황에서 혈액형을 언급하는 건 의미 없는 논쟁"이라고 부연했다.

이씨는 1994년 1월 청주시 복대동 자신의 집으로 처제(당시 19세)를 불러 성폭행하고 살해한 뒤 시체를 유기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부산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그는 시체 유기 과정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과 유사한 수법인 스타킹과 끈, 윗속옷 등으로 숨진 처제의 몸통을 묶어 유기했다.

이씨는 자신의 아내가 가출한 것에 앙심을 품고 범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이 사건 전에 범행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6년 동안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반경 3㎞ 안에서 발생했다. 당시 13세 소녀부터 71세 노인까지 여성 10명이 살해됐다.

이씨는 DNA를 근거로 자신을 용의자로 특정한 경찰 측에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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